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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양반사회의 변화

사회계층으로서 양반은 , 한편으로는 법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관습을 통해 형성된 상대적 ㆍ 주관적인 계층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명확한 기준에  라 확정된 계층으로도 존재했다 . 양반은 살던 지역에따라서 크게 두부류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우선 서울에 살았던 재경양반 혹은 경반이 있고 지방에 살던 재지양반 또는 향반이라고 하였다 . 경반은 양반층 중에서도 명문에 속하는 가계가 많다 . 그들은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 대대로 거처를 정하여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햇고 정부의 고위관직에 오른 사람도 많았다 . 대표적으로 전주 이씨나 파평 윤씨 , 안동 김씨 등이 이에 해당한다 . 그러나 이들 전체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파였으며 재지양반으로서 농촌에 거주하는 가계도 다수 있었다 . 재경양반층은 중앙정부의 권력 변동에 따른 세력의 성쇠가 있었으나 가계의 근본은 분명하였으며 대대로 관료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사회적 특권계층인 양반에 속한 것으로 인지되었다 . 재지양반층은 과거 합격자나 혹은 과거합격자는 아니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를 조상으로 모시며 그 조상으로부터의 계보관계가 명확하며 , 누대에 걸쳐 집단적으로 거주하거나 , 양반으로서의 생활양식을 보존할 걸것 , 대대의 결혼 상대 앞서 말한 조건을 충족할시에 양반으로 인식하는 기준으로 볼 수 있다 . 그러나 실제로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것은 많지 않았으므로 판단하는것은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이라 할 수 있다 . 양반이라는 계층은 반드시 혈연으로 이어지는 계층은 아니었고 객관적으로 양반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없었기 때문에 하위 계층에서 양반계층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필연적이었다 . 조선전기의 양반들은 경지개발에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경제력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중앙정계에 진출함으로써 재지양반층을 광범위하게 형성하였다 . 다시 말해 재지양반층은 확대재생산되어온 것인데 , 17 세기 중반부터 재지양반층의 경제력 발전은 정체 양...

조선과 일본의 사신교류

 고려말 1350년 경인왜구의 침입 이 후 왜구는 끊임없이 한반도를 침탈하였다. 약 40여년간 500회에 못 미치는 침입과 약탈은 그 인원이 많게는 1만명 가까이 된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따라서 고려말 고려 조정에 속해 있기도 하였던 조선의 개궁공신들과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정책과 완전히 동떨어진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고려말에 왜구에 대한 정책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산신을 보내어 왜구의 침입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무력에 의한 대응이었다.  사신은 박인 이후 정몽주등을 수 차례 보내어 왜구에 침탈에 대하여 항의하였으나 당시 일본은 남북조시대였으므로 보여주기식으로 왜구 몇 명을 참수하는게 당시 일본 정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외교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무력적인 방법을 시도하게 되는데, 공민왕이 5軍을 거느리고 순행에 나서는 한편 부병제를 복구하고 수군을 재건하는 한편으로 최무선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왜구의 침탈에 대응하였다.  1392년 조선의 개국하던 시기에 일본에서도 아시카가에 의한 막부가 세워지는데 이가 바로 무로마치 막부이다. 태조시기 왜구에 의한 피로조선인들의 문제와 왜구 금압을 요구하기 위하여 일본에 승려 각추를 보내어 이를 요구하였는데 이것이 조선국왕이 보낸 사신이 막부 장군과 직접 대면한 최초의 사절이다. 이후 몇 차례 사신이 일본에 갔는데 이들은 일본이 약속을 지킨것에 대하여 예로 답한다는 의미의 회례사이다. 태종 4년 막부가 사신을 보냈을 때 처음으로 일왕으로 칭하는데 이는 막부와 조선이 중국의 조공책봉체제하에 같이 들어 간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며 같은 체제하의 국가로서 막부의 수장을 일본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조선이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조선은 개국시기를 지나 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조공책봉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일본과의 사신...

시대구분론

시대구분의 필요성 시대구분은 역사에서 통사를 서술할때와 역사의 발전을 파악하고 그것을 설명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지만 수천년의 역사중 어떤시기에 어떤 시기에 큰 특징적인 변화가 있었는가를 중심으로 시대를 나누게 된다 .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은 보편적으로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로 나누는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 왕조별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 남북국시대 ), 고려 , 조선 , 근대 , 현대로 나누는 방식이 함께 사용되어 진다 . 시대구분은 서양의 구분법에 억지로 끼워 맞출필요 까지는 없지만 세계사의 일환으로서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구분은 필요한 일이다 . 그러므로 한국사 각 시대의 특징을 찾는것은 한국사의 특수성을 확인하는 길이나 그 방법은 보편성을 띄어야 한다 . 시대구분을 하는 것은 역사학적은 의미를 제쳐두고라도 역사학을 일반화시켜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수 있게 한다는데에도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 시대구분은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기를 어디로 보느냐 하는 점에 따라 이루어진다 . 변혁기는 두 개 , 또는 세 개나 네 개 , 다섯 개로 나눌 수도 있다 . 그리고 그 시대를 다시 세분할 수도 있고 , 세분된 시대를 다시 나눌 수 있다 . 그리고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명칭을 시대에 붙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이 개념이 한 시대의 모든 특징적인 현상을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경우에는 , 시대 명칭의 일반적 명칭을 붙여 구분하고 그 시대적 특징을 설명할 수도 있다 . 한 시대의 특성을 규정함에는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시대 명을 사용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마르크스 유물론적 시대 구분   시대구분을 하기위한 움직임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그 처음은 그리스의 헤시오도스에 의한 황금의 시대 , 은의시대 , 청동의 시대 , 영웅의시대 , 철의 시대로 구분한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 이후에...